[기억의 집 1920] 양서준 작가 '무너지는 집에 사는 것에 대하여'
기억의집1920 | 순천시 호남길45
ㅡ
전시일정: 2022.09.30.FRI - 10.05.THU
운영시간: 10시-18시(일요일, 공휴일 휴관)
참여작가: 양서준
전시장소: 기억의 집1920 (전남 순천 호남길45)
ㅡ
작가노트
흙 부스러기가 누워있는 얼굴 위로 떨어져 내린다. 소스라치게 놀라던 것도 몇 번 뿐이고 이제는 손으로 휘휘 저어 대충 이불에서 털어내고서 다시 잠든다. 사그락 거리며 흙 부스러지는 소리는 익숙해졌다. 이따금씩 나무가 갈라지며 내는 틱틱 거리는 소리 역시 그러하다. 한바탕 비가 쏟아진 이후에는 유난히 더 그렇다. 아마 이 집은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작업을 위해 잠시 머물게 된 곳으로, 작은 마당이 있는 오래된 한옥이다. 풀벌레가 많고 그런 벌레를 먹기 위해 작은 새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 그리고 이따금씩 줄무늬며 얼룩덜룩한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리는 곳. 분명 도심 속이지만 자연 속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생태와 관련 있는 주제를 가지고 작업하게 된 만큼 이런 거주 환경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을 청소했다. 몇 번이나 닦아도 먼지가 묻어나왔지만 한동안 머물 집을 관리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였다. 집이 정리되자 그제서야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밖으로 나와 도시를 걸었다. 산을 걸었고 뻘에도 들어가 보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믿고서 새로운 것들을 보려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새롭게 보아지는 것들이 없어 괴로웠다. 내게 보이는 것은 그저 아름다운 것들 뿐 이였다. 깎여나간 산도 그렇고 줄어들고 오염되었다던 뻘도 그랬다. 여전히 내게는 아름다운 것들 뿐 이였다. 주변을 둘러보는 것보다 천장을 보는 시간이 길어질 때쯤에 장마가 찾아왔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먼지처럼 종종 떨어졌던 부스러기는 이때를 시점으로 꽤 큰 덩어리도 곧잘 떨어져 내리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떨어져 내린 흙을 치우고 에어컨으로 습도를 관리하는 것이 다였다. 집을 청소하고 내 짐을 채우고, 밥을 먹고 생활을 하며 애정이 든 집에 내가 무언가 더 해줄 수 없음이 무기력했다. 공간에 유난히 애착을 가지는 성격 탓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에서 작업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존재들은 집이 무너지고 나서야 무너지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조금씩 줄어들고 무너지는 집을 알아챘을 때에는 이미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는 사람이며 동물이며 구분 없이 거대한 자연 속 작은 티끌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항거할 수 없는 흐름은 우리에게 받아들이기만을 강요한다. 무력함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한다. 끊임없이 이어진 생명의 순환들이 그 것을 말해준다. 단지 그러기 위해 현실을 인정하고 수긍할 수 있어야한다.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집을.
전시 도록
전시 미리보기